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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호 별세 사회장

세상사는이야기

by 파라다이스 이면 2019. 6. 11. 0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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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호 별세 사회장

 

이희호 여사가 10일 오후 11시 37분에 별세를 하셨는데 연세가 97세였다고 합니다.

 

이희호 여사는 그동안 노환으로 세브란스 병원에서 치료를 받던중 위기라는 소식을 전하기도 했지만 다시 호환이 되었다고 했는데 다시 안타까운 소식이 들려왔네요.

 

이희호 여사를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인으로만 기억을 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겠지만 이희호 여사는 유명한 사회운동가였다고 합니다.

 

당시에는 여성이 고등교육도 받기 힘든 시절이었는데 이희호 여사는 이화여전과 서울대 사범대를 졸업을 하고 미국 유학까지 다녀온 엘리트 라고 하네요.

 

 

 

 

미국 유학에서 돌아온 후에는 대한여자기독교청년회 연합회에서 활동을 하면서 여성 인권을 외쳤다고 하는데 김전 대통령을 만난것도 1962년 이희호 여사가 YWCA 총무로 있을때 부산에서 시국등에 대한 토론을 하면서 인연이 되었다고 하네요.

 

이희호 여사의 재혼, 전남편등의 말도 안되는 소리가 있는데 김대중 대통령이 전부인과 사별을 하고 이희호 여사를 만나습니다.

 

이희호 여사와 김대중 대통령은 결혼후에 아들 김홍걸씨를 낳았는데 김대중 대통령에게는 이미 아들이 2명이나 있어다고 합니다

 

 

 

 

당시 시대적 배경을 보면 재혼을 결심한것도 대단한 일인데 이희호 여사와 같이 엘리트가 아들 둘있는 남자와 재혼을 한다는건 정말 큰 결심이 필요한 일이었습니다.

 

이희호 여사의 집안도 상당히 좋았거든요.

 

이희호 여사의 아버지 이용기씨는 의사였고 어머니도 한의사 집안의 딸이었다고 하는데 이런 부유한 집안이었기게 이희호 여사를 미국 유학까지 보내줬던게 아닌가 싶습니다.

 

하지만 부부사이는 어땠을지 모르겠으나 김대중 대통령은 결혼후에도 힘든 나날의 연속이었습니다.

 

 

 

 

정치적 탄압을 받았고, 결혼후 열흘만에 김대중 대통령은 중앙 정보부에 끌려가기도 했다고 합니다.

1976년에는 3.1 민주 구국선언사건이후에 옥살이를 반복을 했는데 이때도 이희호 여사는 김대중 대통령 옆에서 옥바라지와 석방 운동을 했다고 합니다.

 

 

 

김대중 대통령은 정말 많은 정치적 탄압을 받았음에도 1997년 IMF 시절 대통령에 당선이 되었고 이희호 여사는 영부인이 되어서 결식아동을 위한 봉사단체 사랑의 친구들과 저소득층 여성을 돕는 한국여성재단등에서 활동을 했다고 합니다.

 

 

 

 

이희호 여사는 영부인으로 할수 있는 일을 다한것이지요.

하지만 김대중 대통령이 퇴임한 후 또다시 아픔을 겪었는데 대북 송금 사건과 아들의 비루 연루도 이희호 여사를 가슴아프게 했다고 합니ㅏㄷ.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희호 여사는 재야와 동교동계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었는데 별세하시기전 마지막까지도 김대중 편화센터 이사장 자리를 지키면서 대북사업을 뒷받침 해주고 있었다고 하네요.

 

이희호 여사의 장례는 사회장으로 진행이 될 예정이라고 하는데 장례위원회는 권노갑 민주평화당 상임고문과 이화여대 총장이 위원장을 맡는다고 합니다.

사회장은 국장, 국민장 다음으로 예우를 갖추어 거행하는 장례로서 정부에서 장례절차와 방법에 직접적으로 관여를 하지는 않지만 장례비용 일부를 보조하거나, 고인의 업적을 감안하여 훈장을 추서하기도 한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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